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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낮과 밤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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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일보기자 기자 작성일2020-09-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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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주 기자 = 성종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 사이에서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불렸으며 오늘날에도 태평성대를 구가한 조선 초기의 마지막 성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사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왕비를 내쫓고 죽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에 의해 능이 도굴되고 파헤쳐져 시신이 불타버려 유실되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성종은 수양대군(세조)의 쿠데타로 무너진 헌정 체제의 복원에 많은 노력에 귀를 귀였다. 그러나 야사에는 성종을 낮에는 요·순 임금처럼 선정을 베풀었지만 밤에는 걸·주 임금처럼 색에 빠졌다고 묘사 했다.

성종은 3명의 왕후와 8명의 후궁 등 11명의 부인에게서 16명의 왕자와 12명의 공주와 옹주를 낳았다.

그 많은 부인 중에 한 명이 연산군의 모친 윤씨였다. 만 열 살 때인 세조13년에 한명회의 딸과 혼인한 성종은 재위 4(1473)만에 16세의 나이로 판봉상시사 윤기견과 윤호의 딸을 동시에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이듬해 공혜왕후 한씨가 후사 없이 죽고, 윤기견의 딸이 왕자 연산군을 낳자 성종은 재위 7년에 윤씨를 왕비로 책봉했다.

그러나 친정이 막강했던 죽은 한씨와는 달리 부친까지 사망한 한미한 가문의 윤씨에게는 도전하는 후궁들이 많았다.

성종 8년 숙의 권씨 집에 소용 엄씨와 정씨가 왕비 윤씨가 왕비 윤씨와 원자 연산군을 헤치려한다는 내용의 투서가 날아든 것도 다툼의 일종이었다.

당시 대궐에는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모친 인수대비 한씨, 예종비 안순왕후 한씨 등 대비가 세 명이나 있었다.

왕비 윤씨의 방에서 독약의 일종인 비상과 굿하는 방법이 담긴 방양서를 발견한 성종은 투기의 증거라고 대비에게 보고했다.

이에 격분한 정희왕후는 대신들을 모아 놓고 세상에 오래 살게 되면 보지 못할 일이 없다고 했다. 성종의 총애를 잃고 대비의 미움을 산 왕비 윤씨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성종의 모친 인수대비 한씨는 성종 6(1475) 편찬한 내훈(內訓)에서 나는 일찍이 책을 읽다가 달기(은나라 주왕의 비)의 웃음과 포사(주나라 유왕의 총애)의 아양에 이르러서는 책을 덮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한씨는 내훈에서 남편에게 오직 순종할 뿐 감히 거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적었으나 일찍 미망인이 된 한씨와 달리 왕비 윤씨는 호색이었던 성종의 여성 편력에 속을 썩었다.

야사에는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고 전하고 있으나 성종실록에는 거꾸로 왕비가 성종이 총애하는 후궁의 방에 뛰어들었다가 뺨을 맞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성종은 왕비를 재위10(1479) 62일 한명회, 정창손, 윤필상 등을 불러 지금 중궁의 행위는 말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내간에는 시첩의 방이 있는데 일전에 내가 마침 이 방에 들어갔는데 중궁이 아무 연고도 없이 들어왔으니 어찌 이와 같은 일이 마땅하겠는가?” 라고 비난하였다.

성종은 칠거지악이니 마땅히 폐하여 서인으로 삼으려하니 도승지 홍귀달은 원자를 낳았으니 폐하여 서인으로 삼는 것을 옳지 않다고 반대하자 반대한 이들을 투옥하고 그 날로 왕비 폐출교서를 반포했다.

그러나 이 조치에 백성들의 민심은 부정적이었고, 성균관 유생들은 윤씨를 민가가 아니 별궁으로 옮기라고 상소하자 서생들은 국사에 관여하지 말라며 유생들을 옥에 가두었다.

성종13년 시독관 권경우는 국모가 되었던 분을 여염에 살게 하니 일국의 신민이 마음 아프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라며 동정론을 폈고, 대사헌 채수도 윤씨에 대한 백성의 동정을 전했다.

성종과 대비들은 윤씨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한 결과 아들이 왕이 되기 전에 죽이 것으로 결정했다.

성종과 대비들이 윤씨를 죽이려는 뜻을 강하게 표시하자 공신들도 대부분 동의했다.

공신들은 한나라 무제가 구익부인의 아들 유불릉(훗날 소제)을 태자로 세우고 태자의 모친 구익부인이 죄가 없는데도 죽여 버린 것처럼 세자의 모친 윤씨를 죽여야 한다는 뜻을 펼쳤다.

성종의 나이 스물다섯 좌승지 이세좌를 윤씨에게 보내 사사했다고 기묘록에 전한다.

윤씨는 피눈물을 닦아서 얼룩진 수건을 어머니 신씨에게 전하면서 내 아이가 다행히 보전되거든 나의 슬프고 원통한 사연을 알려 주오라고 부탁했다.

목숨 걸고 권력 쟁취에 나섰다가 불행한 정객이 많은 반면 권력이 그냥 굴러 들어오는 행운아도 있다.

예종은 공신집단이 권력을 장악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 추구하다가 역습을 당했지만, 왕이 된 어린 성종은 현실을 거스르면서 개혁을 추진할 생각이 없었다.

예종이 왕위를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면 성종은 공신들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치가로 성공하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성종은 현상적 처방에 만족함으로 외면한 문제는 훗날 극악의 불씨를 고스란히 연산군에게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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